꿈메신저의 꿈꾸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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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 캐기 / 문학철

큰 형님이 호도 캐러 가자한다
'하하, 형님도
호도가 고구맙니까'

염색한 머리 밑에서 허옇게

돋아오는 머리칼 쓸어 올리며

구부정하니 여윈 큰 형님이 그냥

빙긋이 웃으며 망태기 하나

괭이 하나 들고 앞장을 선다

 

추석에 성묘 왔던 사람들이

사과 과수원 울타리로

넉넉히 둘러둔 밤나무 호도나무

섞어 둔 숲에 숨어들어 알밤 너
덧 말 실히 털어 가는데도 '넵 둬라.

다 여기 연고 있는 사람들 아니겠냐.'

하더니 다람쥐란 놈들 실히

한 가마니는 물어 갔으니 반은

찾아와야겠단다

 

산비탈 몇 곳 괭이로 헐어 내어 두어

말 망태기에 담으며 나는 신이 났다
이곳저곳 더 욕심냈더니
그만 가잔다
'반만 건지면 됐다'

 

다람쥐란 놈 욕심은 많고 머리는 나빠

제 먹을 것보다 몇 곱절 물어 간다고 한다

그래 놓고는 어디에 다 묻어 두었는
지 몰라 겨울에 굶어 죽기도 한다는데

하하, 그런 어리석음 덕분에 다람쥐가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나 그렇게 땅 속에
물어다 묻어 논 것들이 싹을 틔워서

도토리 숲이 퍼져 갔다나

 

구부정하니 앞서 내려가는 형님
머리 위로 흰 구름 한 자락 여유롭다

 

[오늘의 시] 호도 캐기 / 문학철, 흰 구름 한 자락의 여유

 

♣ 이 시를 읽다 보니 공광규 시인의 「담장을 허물다」가 떠오릅니다. 분위기와 배경이 비슷한 것도 있고 시 전반에 흐르는 정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두 편의 시 모두 각박한 현대 사회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어우러져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공광규 시인의 담장을 허물다도 꼭 읽어보세요. 

 

문학철 시인의 '호도 캐기'를 보면 풍자와 여유가 느껴집니다. 

 

요즘은 야산의 떨어진 밤도 함부로 주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다 주인이 있으니 괜히 잘못 주웠다 걸리면 몇 배의 값을 치러야 할 때가 있더군요. 제가 아는 지인도 길가의 감 몇 개를 땄다가 그 값을 톡톡히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도 캐기'를 보면 큰 형님의 큰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알밤 너
덧 말 실히 털어 가는데도 '넵 둬라.

다 여기 연고 있는 사람들 아니겠냐.'

 

이런 게 각박한 도시를 벗어난 시골의 정서인데 요즘은 그것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너무 살기 힘들어져서 그런 건지... 근데 소득은 몇 배 좋아졌다는 데 왜 더 살기 빡빡하게 느껴질까요? 

 

그래서 이런 정서가 더 그리워지는 것 같습니다. 다람쥐가 땅 속에 파묻어 둔 호도도 다 캐가지 않고 남겨서 다람쥐도 먹을 수 있게 배려해주는 마음이 좋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 시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안 사실이 있는 데 실제 다람쥐는 자기가 파묻어 둔 도토리나 호도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땅 속에 묻혀진 도토리나 호도들이 나중에 자라 나무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산에서 보는 도토리 나무와 호도 나무는 사람들이 심은 것이 아니라 다람쥐들이 먹으려고 파묻어둔 도토리와 호도가 나무로 성장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재밌는 사실이죠?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다람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이런 순환이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요? 그런데 점점 시대가 발전할수록 이런 섭리가 깨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구부정하니 앞서 내려가는 형님
머리 위로 흰 구름 한 자락 여유롭다'

 

문학철의 시 호도 캐기의 마지막 한 줄이 마음에 여운을 오래 남겨줍니다. 팍팍한 삶에서 흰 구름 한 자락의 여유라도 찾아보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호도 캐기 한 번 해보면 시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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