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고등학교 때까지 책이란 것을 거의 안 읽고 살았었다. 공부하는 데 필요없다는 생각에 책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국어 수업시간 내내 50분을 어떻게 때워야 하는 생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아니 듣기 보다는 그냥 몰래 잠자거나 딴 짓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 들어가 형의 충고로 독서라는 것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1년에 100~200권 정도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었던 시간들은 독서 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동안 독서를 멀리 했던 날들이었구나라는 것을.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었다.
특히, 시는 학교에서 배웠던 그런 분석적인 해석이 아닌 내 감정에 이끌린 느낌 그대로 받아 들이니 뭔가 마음속에 감성이 충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중 단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시는 바로 천상병시인의 귀천 [歸天]. 우리 어렸을 땐 입시 공부에 치여 인생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이 가득했는 데 이 시는 왠지 그런 감정을 가지면 안될 것 같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낸다니. 소풍이라면 그 전날부터 기분이 들떠서 설레이는 마음에 잠도 못자고 기다리는 거 아닌가? 근데 그 동안 내가 살아왔던 인생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는 데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거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지 않는 표현이었지만 마음에는 저 깊이까지 새겨지는 말이었다.
이런 예쁜 꽃에 잠시 머물렀던 새벽 이슬처럼 인생을 마치는 날에 노을빛과 단둘이서 뛰놀던 기슭을 벗어나 구름타고 하늘로 돌아가리라.
너무 아름다운 시였다. 한동안 이 시에 마음을 빼앗겨서 지인들에게 참 많이 소개했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시인 아내분이 운영하는 인사동 찻집 '귀천'에도 찾아가 차를 마시고 오기도 했었다.
분명 내용은 참 슬픈 내용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니까. 근데 이 시는 그마저도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마지막 단을 읽고 나면 절대 죽음에 대해 슬픈 감정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아름다웠더라고 말한다는 말에 어떻게 슬퍼할 수 있을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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