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시립박물관에서>
묵화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정말 짧은 시입니다. 단 6줄 밖에 안되는 데 읽으면서 느껴지는 이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요?
왠지 저 할머니는 오래 전에 남편이 돌아가시고 혼자 지낸 지 꽤 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신가요?
그 할머니 곁에 자식들도 없고 적막한 시골에 오직 소 한마리가 함께 남은 인생을 지켜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할머니와 소는 밭으로 논으로 일을 나갈겁니다.
발걸음이 터벅터벅 걷는 것이 상상이 갑니다.
급한 일들이 있거나 꼭 해야 할 일이 없을 수도 있는 데 오랜 일상의 습관이 되어버린 발걸음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소와 할머니는 서로의 친구가 되어 아무 일 없이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일이 다 끝날 쯔음 마른 목을 축이는 소 곁에서 할머니가 소 목덜미에 살며시 손을 얹습니다.
장면이 상상가지 않나요?
해는 저물어 서쪽에 붉은 노을이 감돌고 살짝 어둠이 내려올 때 서로 부은 발등을 보듬으며 적막한 하루를 잘 보냈다고 위로 삼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목가적이고 여운이 남는 시가 있을까요?
한 동안 머리속에 상상한 모습이 사진처럼 남아 마음이 찡하게 느껴집니다.
집으로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시진 않겠죠? 이제는 더 볼 수 없어 향수를 불러 일으키네요.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가던 때가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혼자 식사하시니 저런 작은 소반에 상 차려서 드시겠죠?
많이 외로우실 것 같습니다.
저 문짝 뒤편에 오늘 하루도 잘 보내신 할머니께서 편안한 밤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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