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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하루67

좋은 시 모음, 시인 서안나 - 깊어지는 사과 / 모과 / 슬픔의 좌표 좋은 시 모음, 시인 서안나 - 깊어지는 사과 / 모과 / 슬픔의 좌표 깊어지는 사과 ​ 익는다는 것은 사과의 의지 사과나무를 떠나겠다는 깊어지는 사과의 표정 사과를 깎으면 나무의 첫 마음 소리가 난다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듣는 오후 떠나는 것들은 왜 모두 젖어 있을까 남근을 자르고 신의 목소리로 노래한 자는 육체를 버리고 영혼으로 돌아갔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나무를 버린 꽃의 손목이 있다 어머니를 놓아버린 피 묻은 내 손가락이 있다 두 귀에 푸른 뱀을 걸고 우리는 서로 안녕 최초의 의자로 돌아가 머리카락을 뽑고 캄캄해진다 사과가 익는 저녁은 수상하다 잘 익은 사과를 먹으면 당신의 깊어지는 감정을 이해하는 일 첫 생각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나는 뱀을 삼키고 태어났으므로 나는 어머니를 삼키고 태어.. 2021. 4. 30.
향수 / 정지용,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수(鄕愁)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 2021. 4. 29.
5월의 시 - 도종환, 이해인, 김영랑, 이채 잔인한(?) 4월도 벌써 며칠 남지 않았네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그리고 벚꽃이 다 지고 이제 길가엔 철쭉들이 형형색색 그 자태를 뽐내는 계절입니다. 5월이면 왠지 설레는 마음이 들곤 했었죠. 학생은 중간고사 끝나고 소풍이나 축제 또는 체육대회 등으로 시험공부하는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어른들은 가정의 달답게 어버이날 온 가족이 모여 가족 간의 우애를 다질 수 있으니 참 좋은 달이죠. 올 해는 작년처럼 코로나때문에 역시 이런 추억들 쌓는 것이 많이 힘들겠죠.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5월에 관련된 시 몇 편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5월의 시 - 도종환, 이해인, 김영랑, 이채 5월이라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의 경쾌한 시가 많을 줄 알았는 데 의외로 가슴 아픈 시들이 꽤 많네요. 왜 .. 2021. 4. 26.
[오늘의 시] 호도 캐기 / 문학철, 흰 구름 한 자락의 여유 호도 캐기 / 문학철 큰 형님이 호도 캐러 가자한다 '하하, 형님도 호도가 고구맙니까' 염색한 머리 밑에서 허옇게 돋아오는 머리칼 쓸어 올리며 구부정하니 여윈 큰 형님이 그냥 빙긋이 웃으며 망태기 하나 괭이 하나 들고 앞장을 선다 추석에 성묘 왔던 사람들이 사과 과수원 울타리로 넉넉히 둘러둔 밤나무 호도나무 섞어 둔 숲에 숨어들어 알밤 너 덧 말 실히 털어 가는데도 '넵 둬라. 다 여기 연고 있는 사람들 아니겠냐.' 하더니 다람쥐란 놈들 실히 한 가마니는 물어 갔으니 반은 찾아와야겠단다 산비탈 몇 곳 괭이로 헐어 내어 두어 말 망태기에 담으며 나는 신이 났다 이곳저곳 더 욕심냈더니 그만 가잔다 '반만 건지면 됐다' 다람쥐란 놈 욕심은 많고 머리는 나빠 제 먹을 것보다 몇 곱절 물어 간다고 한다 그래 놓고.. 2021. 4. 21.
정호승 - 수선화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이해와 감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레리오페의 아들인 ‘나르시스’는 미청년(美靑年)으로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결국 물에 빠져 죽어서 수선화로 피어났다는 이야기(그의 이름은 ‘자.. 2021. 4. 16.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곳에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 202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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