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사과
익는다는 것은
사과의 의지
사과나무를 떠나겠다는
깊어지는 사과의 표정
사과를 깎으면
나무의 첫 마음 소리가 난다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듣는 오후
떠나는 것들은 왜 모두 젖어 있을까
남근을 자르고
신의 목소리로 노래한 자는
육체를 버리고 영혼으로 돌아갔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나무를 버린 꽃의 손목이 있다
어머니를 놓아버린 피 묻은
내 손가락이 있다
두 귀에 푸른 뱀을 걸고
우리는 서로
안녕
최초의 의자로 돌아가
머리카락을 뽑고 캄캄해진다
사과가 익는 저녁은 수상하다
잘 익은 사과를 먹으면
당신의 깊어지는 감정을 이해하는 일
첫 생각을 지키는 사람이 된다
나는 뱀을 삼키고 태어났으므로
나는 어머니를 삼키고 태어났으므로
찬밥처럼 고요하게
내 안의 목차를 따라 깊어진다
저녁이었다
모과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 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슬픔의 좌표
슬픔은 뾰족하다
뼈가 다 보인다
끝에 독이 묻어있다
누가 꼽았을까
압정처럼 박힌
흰 꽃
진흙 얼굴이 보인다
물소리가 난다
올 여름
다시 피었다
번쩍이는 발목을 들고
쇠칼로 베어내도
죽지 않는
흰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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