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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이해와 감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레리오페의 아들인 ‘나르시스’는 미청년(美靑年)으로 물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결국 물에 빠져 죽어서 수선화로 피어났다는 이야기(그의 이름은 ‘자기애(自己愛;narcissism)’를 가리키는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쓰이고 있다.)에서 모티브를 얻어, 응답 없는 사랑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인간 존재의 숙명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가슴 아픈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외로움이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것으로 ‘하느님’조차 이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역으로 외로움에 떨고 있는 모든 이를 위로하는 말로 외로움은 그 누구에게나 있기에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출처] 수선화에게 - 정호승 / 감상 이완근, 이학준 (제주 시詩사랑 숨비소리)

 

정호승 - 수선화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고독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쓰이는 요즘 이 시가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 같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건 분명 좁게는 한 가족의 일원으로, 넓게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 옆에 같이 있어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어떤 계기로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외로움을 느끼고 고독에 더 몸부림 치는 것 같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이 시 '수선화에게'에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고 쓴 문장을 읽었을 때 오히려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가족이나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해도 그 모든 사람들과 항상 같이 존재할 수는 없는 건데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 기대와 위로가 오히려 사람들을 더 외롭게 만들고 고독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는 건 그 만큼 외로움이라는 것이 근원적 감정이라는 걸 표현한 건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우리가 곁에서 보듬고 가야 할 정서인 것이다. 그 외로움을 떨쳐내려 고통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자세가 오히려 덜 외로움에 빠지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외로움과 고독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눈이 오면 그 눈을 맞으며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빗길을 걸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피하지 말고 거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을 더 편하게 만드는 방법일 될 것이다.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는 외로운 마음을 잘 표현해서 우리에게 위로를 전달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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